왜 우리는 연인에게 맞서 싸우는 것만큼 친구를 위해 싸우지 않을까요?
한번은 한 친구와 산책을 하며 그 친구와 가까운 사람 사이에 생긴 긴장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무슨 연인 관계도 아니잖아.” 1년 후, 똑같은 일이 우리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루아침에 친구는 더 이상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을 때 친구는 모든 게 괜찮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그 산책에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고, 뒤이어 슬픈 깨달음이 밀려왔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친구를 사랑한다고요. 친구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뭔가 잘 풀리지 않고 있고,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만큼 너를 아껴”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많은 사람은 침묵하고 원망이 곪아가도록 내버려 둡니다. 우리는 낭만적 사랑을 위해서는 놀라울 만큼 많은 노력을 기꺼이 합니다. 상담, 자기계발서, 커플 심리측정 검사, 어려운 대화도 어려운 대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나눕니다. 소중히 여기기에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친구에 대한 사랑은 같은 수준의 노력을 이끌어 내지 못합니다.
이는 우리가 우정을 ‘관계’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하지만 저는 우정도 관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정에는 애정, 충성심, 함께한 역사, 정서적 친밀감처럼 낭만적 사랑과 동일한 모든 요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낭만적 사랑을 위해 애쓰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우정을 위해 애쓰는 것은 왜 그렇지 않을까요?
아마토노르마티비티: 기본적인 삶의 목표로서의 낭만적 파트너십
답의 일부는 우리가 문화적으로 낭만적 사랑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파트너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정서적 지지자, 지적으로 대등한 사람, 모험의 동반자이며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연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자명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그 생각을 마치 인간의 본성인 양 여깁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는 비교적 최근의 개념입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변화가 낭만주의가 사랑을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의 원천으로 격상시킨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봅니다. 그전까지 결혼은 대개 실용적인 것이었고, 다른 관계적 욕구는 공동체, 대가족, 종교 생활, 그리고 특히 우정이라는 더 넓은 연결망에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에스더 페렐이 지적하듯, 20세기 서구 사회에서 커지는 개인주의와 약화되는 종교적 영향력은 그 연결망을 점차 축소했습니다. 결국 한때 마을 전체가 해주던 일을 한 명의 낭만적 파트너에게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각본을 ‘아마토노르마티비티’라고 합니다. 낭만적 사랑이 성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이며, 누구나 파트너를 찾고 유지하는 일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야 한다는 가정입니다. 한번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가 읽고, 듣고, 넷플릭스에서 보는 모든 것은 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병문안, 상속법, 사별 휴가까지 모두 낭만적 파트너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있습니다. 법의 눈에는 6개월 된 결혼이 20년 된 우정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우정은 원래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요?
우정을 처음부터 어떻게 상상하는지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쩐지 우리는 그 사실을 우정이 아닌 연애에만 적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우정은 힘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고 여깁니다.
친구 사이에 긴장이 생기면, 많은 사람은 이를 각자의 성격, 필요와 선호를 지닌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마찰의 순간으로 해석하지 않고, 물러나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이 관계에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대신, 우정이 해롭다거나 관계가 끝날 때가 되었다고 결론 내립니다. 친구에게 문제를 꺼냈다가 까다로운 사람, 혹은 ‘늘 모든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치 제대로 이야기해 보기보다는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 중 하나인 브라이드메이즈에서는 바로 이 이유로 애니와 릴리언의 오랜 유대가 거의 무너지는 모습을 봅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릴리언의 삶이 더 부유하고 화려한 세계로 흘러가기 시작하면서 애니는 점점 뒤처진다고 느낍니다. 우정은 더 이상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관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애니는 부족함을 느끼고 릴리언을 잃을까 두려워하지만, 이를 말하는 대신 감정을 묻어 둡니다. 그러면서 질투와 원망이 주도권을 잡게 합니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엉뚱한 방식으로 새어 나오며, 점점 커지는 재앙 같은 사건들을 통해 관계를 거의 파괴합니다. ‘그저’ 영화일 뿐이지만 그 논리는 고통스러울 만큼 익숙합니다. 입을 여는 것보다 스스로 무너지는 편이 더 쉬워 보이는 것입니다.
계약도, 기대도 없다
관계를 떠나는 일이 그토록 쉬운 이유 중 일부는 우정 자체의 구조에 있습니다. 낭만적 관계에는 주택담보대출, 자녀, 가족 관계, 공동 계좌,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회적 기대처럼 이미 마련된 닻이 있습니다. 일이 어려워져도 관계를 유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독려하는 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정에는 대부분 그런 것이 거의 없습니다.
친구들이 책임을 함께 지는 경우에도, 관계를 떠나는 길은 왠지 더 쉽게 느껴집니다.
제 친구를 안나라고 해보겠습니다. 안나는 몇 년 동안 절친이었던 로라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몇 달 뒤 로라는 며칠씩, 그러다 몇 주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자기 방을 낯선 사람들에게 전대했습니다. 안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라는 더는 함께 살고 싶지 않다며, 이미 새 아파트를 구했고 현재 자기 방을 빌리고 있는 남자가 그대로 계속 살면 어떻겠냐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전부 왓츠앱으로요! 안나의 반응이 상상될 것입니다. 낭만적 관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은 몇 년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는데, 하루아침에 펑. 형편없는 틴더 데이트에서처럼 잠수 이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 잔혹한 끝맺음이 가능한 이유는 우정이 성인의 관계 중에서도 전적으로 자발적인 몇 안 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계약도 없고, 얼마나 자주 만나야 하는지 또는 의견 충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도 없습니다. 커플이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일반적인 기준은 갈등 해결을 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정이 멀어질 때, 누군가 ‘안타깝다’고 말해 주기만 해도 다행입니다.
서로 다른 성격을 위한 의식적인 우정
모든 것이 같은 근본 문제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우리는 정서적 에너지를 낭만적 관계에 쏟아붓고 나머지는 알아서 버티게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각본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더 많은 여성이 아마토노르마티브한 서사 바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처녀’나 ‘고양이 집사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되찾고 있습니다. 독신은 더 이상 수치심의 원천이 아니며, 여성 모임은 버섯처럼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매애는 커지는 반면 데이트 앱은 쇠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치관이 변화하는 동안, 우정 기술은 아직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재정의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등을 피하고 필요를 축소하며 우정은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고 기대하는 오래된 습관대로 행동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를 위해 어떻게 곁에 있을지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인 관계 맺기’라는 개념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의식적인 관계 맺기란 모든 관계를 그저 나에게 일어나는 일로 여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돌보는 대상으로 대하는 실천입니다. 자신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편한 말을 하는 대신 실제로 진실한 것을 말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뜻합니다. 전혀 혁명적인 일은 아닙니다. 다만 우정에서는 낯설 뿐입니다.
그 습관을 바꾸기 시작하는 간단한 방법 하나는 성격에 호기심을 갖는 것입니다. 각자가 실제로 친구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긴장이 생겼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세요. TypeFinder® 성격 검사처럼 Myers–Briggs에 기반한 도구는 이를 표현할 언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당장 말로 풀고 싶은 유형이든, 생각하고 진정할 시간이 필요한 유형이든 말입니다. 그리고 침묵 때문에 친구를 잃는 데 지쳤거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더 진정성 있게 함께하고 싶다면 다음을 시도해 보세요.
- 자신의 패턴을 알아보세요. 성격 퀴즈를 함께 풀고, 각자가 갈등과 친밀감, 거리 두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서로 비교해 보세요. 한 사람은 ‘지금 큰 소리로 풀어야 해’ 유형인 반면, 다른 사람은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를 분명히 말해 두는 것만으로도 많은 상처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 말해야 할 것을 말하세요.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지면 말하세요. 정말로, 너무 사소한 문제란 없습니다. 원망이 쌓이게 두지 마세요.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성격 보고서를 함께 꺼내 보고, 그것이 대화의 일부를 대신하게 하세요.
- 책임을 지세요. 탱고는 두 사람이 추는 춤입니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이지만, 해결책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마음속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전에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세요. 자신의 두려움, 동기, 성격이 그 이야기에 어떤 색을 입히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사실로 단정하지 말고 친구에게 확인하세요.
- 취약함을 드러내세요. 가장 깊은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조롱이나 거절에 자신을 노출하는 일은 어렵지만, 깊이 연결되고 의미 있는 우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낭만적 관계에서 이미 이러한 것들을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친구 관계도 그만큼의 정성으로 다룰 수 있다는 자각과 허락뿐입니다.
밀레나 제이 위스니에프스카는 아일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관계 건강 및 영성 분야 작가입니다.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보유했으며, 모든 일을 그만두고 전업 캐리 브래드쇼가 되기 전까지 기술 기업에서 고객 관리자로 일했습니다. 아직 자신의 유형을 확정하지 못한 ENXJ인 그녀는, 따뜻한 지혜가 필요할 때 찾게 되는 직설적이면서도 유쾌한 절친입니다. 또한 전업 서퍼이자 영화 애호가, 책벌레이며, 늘 수첩을 들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자칭 고뇌하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